황상호(黃尙鎬) 2대 회장
광주Y의 2대 회장인 황상호에 대해서는 별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나, 그가 3․1만세운동 시에 크게 활약하였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당시 제중병원(현 기독병원)의 경리 직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1919년 3월 5일 양림리의 남궁혁 장로(뒤에 목사)의 집에서 거사 준비모임을 가졌을 때 김철(김복현)을 비롯한 광주의 최병준, 김강, 최영균, 서정희, 김태열, 홍승애 등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3월 10일의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또한 그는 독립운동을 영속화시키기 위하여 황송우(黃松友)라는 가명으로 지하신문인 ‘조선독립 광주신문’을 등사판으로 밀어 만들어서 비밀리에 살포하였다. 이것은 당시 서울에서 윤익선의 이름으로 발행되었던 ‘조선독립신문’을 받아보고 생각해낸 것으로 제중병원 약제사 홍덕주, 장호조 등의 협조를 얻어 제4호까지 발행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황상호는 체포되어 징역 2년의 선고를 받게 된다. 황상호는 1921년 광주 금정교회에서 김강(숭일학교 교사)과 함께 장로에 임직되었고, 그 교회의 당회 서기로 오랫동안 봉사하였다. 그 뒤에 평양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마친 뒤 1931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그리스도의 복음선교에 매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