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웬(오원 Clement C. Orwen) 선교사
광주YMCA가 1920년 7월 29일에 창립된 역사적인 장소가 곧 오원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 건축된 ‘오원 기념각’이다. 오원선교사는 유니온 신학교를 거쳐 버지니아대학 의대에서 공부한 의사요 목사로서 미국 남장로교의 파송을 받아 1898년에 한국에 온 선교사이다. 그는 처음에 전남지방의 복음 선교를 책임진 배유지 목사와 함께 1898년에 목포 선교부를 개설하고 선교활동을 하였다. 목포 진료소(뒤에 프렌치기념병원)을 설치하고 의료사업을 통하여 전도활동에 힘썼고 배 목사와 함께 교회를 돌보았다. 그 뒤에 미국 남장로교는 광주선교부 설치를 결정하였으며 1904년 크리스마스 때 배유지 목사 부부와 오원 목사 부부가 배 목사 사택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광주선교가 시작되었다. 제중원의 오원 선교사는 광주에 온 뒤 의사 일보다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로서 열성을 다하였다. 배 목사가 광주와 전남의 북부지방을 담당하였고 오원 목사는 전남의 남부지방을 담당하여 주로 순회전도를 하였는데, 장흥지방 전도 중에 급병이 발작하여 광주 제중원에 후송되었으나 1909년 4월 30일 별세하고 말았다. 오원 목사를 치료코자 목포에서 오던 포사이드 선교사의 나환자 사랑을 목격하고 최흥종이 구라사업에 투신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오원 목사가 생존시에 그의 조부 기념관을 짓기 원하였기 때문에 사후인 1914년에 세운 ‘오원 기념각’은 오원 목사와 그의 조부 윌리암을 기념하는 건물이 되었다. 오원 기념각(현 양림동 기독병원 간호대 강당)은 일제시대 이 고장의 유일한 문화센터로서 연극, 음악, 강연회 등 공연장의 역할을 담당하였고, 종교 집회장소로서 그 역할을 다하였다. 광주YMCA도 1920년 바로 이 기념각에서 창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