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욱(崔泳旭) 6대 회장
광주Y 창립의 초대회장은 최병준 장로(뒤에 목사)였지만 그 정신적 지주는 모두 인정하듯이 최흥종 목사이다. 최영욱은 바로 광주Y의 위대한 지도자인 최흥종의 아우로서 Y와 지역사회를 위하여 크게 기여하였다. 최영욱은 1891년 광주 불로동에서 출생하여 숭일학교를 거쳐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로서, 1921년 3월에 미국 유학을 가 켄터키 주립대학 의학부를 마치고 1926년에는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1927년에 광주 제중병원의 원장 대리를 역임했고, 충장로에 서석병원을 개설하여 이 지역의 인술활동에 이바지하였다.
1935년에는 광주Y 회장으로서 1938년까지 봉사하였다. 그러나 일제 말인 1937년부터는 일본의 탄압이 극심해져서 1938년에는 조선Y가 일본 기독교청년회 산하의 조선연합회로 예속되고 모든 Y사업이 중지되는 위기에 놓였다. 또한 최영욱은 광주YMCA를 물질적으로 크게 도왔다. 1945년 9월 미군정이 시작하면서 잠시 전라남도지사를 역임하였고 호남매일신문사장을 지내기도 했던 최영욱 박사는 병원을 개업하여 의술을 펼치던 중 1950년 6.25전쟁 때 인민군에 납치되어 처형되었으니, 불행한 민족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최영욱 박사의 부인은 1930년대에 수피아 여학교의 교감을 역임하고 해방 후에는 교장으로서 수고하였고 모교인 정신여중고의 교장과 이사장 일을 하였던 김필례 여사이다. 그분은 여성교육과 YWCA운동에 전념한 선각자이기도 하지만, 최흥종 목사의 자녀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일에 헌신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