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옥(朱亨玉) 7대 회장
주형옥은 일제말 탄압이 극심해졌을 때 광주YMCA의 마지막 회장으로서 수고한 기독교 지도자였다. 1938년에 조선 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조선의 Y는 일본Y의 산하단체로 편입되는 위기의 시대에 주형옥은 최영욱 회장을 이어서 1939년에 광주Y 7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1944년 Y 해산 때까지 광주Y를 지켰다. 그러나 수기동 회관(또는 충장로 회관)은 이미 김동일의 목공소로 바뀌었고, 정상적 프로그램이 중단된 상태였다. 그 때 총무는 김철주였으며, 이 두 분은 의형제를 맺고 있었는데, 주형옥의 본명은 주태선이고 김철주의 본명은 김창선이었다.
본래 주형옥은 1899년 화순군 동북면 태생으로 광주 숭일학교 학생 때에 광주 3․1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6개월 징역형을 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그 뒤 1922년에 중동중학을 졸업하고 연희전문 수물과에서 수학하였다. 처음에는 교육자가 되어 숭일학교 교사(25년), 목포 영흥학교 교사(32년), 광주 숭명학교 교사(38년)를 역임하였고, 해방 후에는 숭일중학교 교장(45-47년)으로 시무하였으며 호남신학교장(63년) 일을 맡기도 하였다. 목포 양동교회에서 장로 임직을 받고 광주 금정교회 장로로 봉직하던 중 1957년에 장로회 신학교를 늦은 나이에 졸업하여 목사가 되었는데, 영산포교회, 광주 서석교회, 전주 성암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하였다. 해방 후 한독당 전남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민족애가 투철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닌 교회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고 1993년 8월 지병으로 별세하여 전북 노회장으로 장례를 거행하였다. 유족으로 아들 삼열과 정숙, 은숙 등 7녀를 두었고 전주 기전여대를 설립한 고 조세환 장로는 둘째(금숙) 사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