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오(金泰午) 3대 총무
김태오는 1903년 7월 16일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가족과 함께 광주로 이주하여 숭일학교에서 공부하였는데,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나 다시 광주로 내려와서 문필활동과 민족운동을 하였다. 1929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일본대학 법문학부 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금정교회 집사로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1931년 광주YMCA의 총무로 일하였다.
그는 1926년에 동아일보에 동화 ‘황금생선’을 발표하고 또한 동요 ‘입분달’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문필활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방정환 등과 조선소년연합회를 조직하고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28년에는 신간회 광주지회간사, 광주청년동맹 소년부 집행위원으로 전남소년동맹의 창립을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금고 4월에 처하는 등 세 번이나 옥고를 치루었다. 시집 ‘초원(1939)’을 발간하였는데, 그의 시 ‘달밤’은 나운영이 작곡하여 널리 회자되었다.
한편 김태오는 처형인 임영신과 함께 1934년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하여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부교장에 취임하였다. 1945년 중앙여자대학, 1948년 중앙대학으로 개편하면서 교수 겸 부학장, 1953년 중앙대학교로 발전하자 부총장으로 봉직하다가 1954년 은퇴하여 명예교수가 되었으며, 1976년 7월 25일 별세하여 중앙대학교장으로 장례를 거행하였다. 그의 저서로 ‘미학개론(1955)’,‘민족심리학(1950)’이 있으며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어 1994년 건국훈장을 받았고, 아호는 정영(靜影), 또는 설강(雪崗)이다. 이처럼 김태오는 민족운동가요, 문필가요, 교육자로 일생을 살았다.